2022. 11. 28. 10:30

PG Unleashed RX-78-2 Gundam 제작기 #1 - 조립

저는 미국에 오면 건프라에는 더이상 손을 안 댈 줄 알았습니다. 미국 통관 시 인화성 물질이 걸리면 골치아파진다고 하길래, 아끼던 모형용 래커 도료들을 미리 한국에서 다 처분한 것이 일단 타격이 컸습니다ㅜㅜ. 그리고 미국 반다이에서 건담 프라모델은 공식 수입을 안 하는지 건프라 가격이 거의 한국의 두 배쯤 비싸기도 하고요.
아근데 안 된다고 하니까 왠지 자꾸 더 하고 싶고 마음이 더 쏠리는 이 심리는 뭘까요? 한국 떠나기 직전에 회사 후배님에게 미개봉으로 구매해서 들고 온 Perfect Grade Unleashed (이하 PGU) RX-78-2 퍼스트 건담 박스를 결국 깠습니다.

1/60 스케일의 Perfect Grade (이하 PG)는 반다이 건프라의 최고가 라인이었는데, 2020년말에 새 버전의 퍼스트 건담을 내면서 PG 건담 Ver. 2.0이 아니라 아예 PG Unleashed라고 한층 더 비싸고 특별하며 고급진 등급을 새로 개설했는데요. MGEX라는 고가 라인업이 나온 이후에도 일반 MG 등급 킷은 계속 발매되고 있지만, PG는 최고/완벽이라는 위상을 생각해볼 때 아무래도 앞으로는 모두 PGU로만 나오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해 봅니다.
아무튼 실제로 PGU 건담을 조립해 보니, 가격 대비 내용물이 좀 적기는 합니다만... 금색도금/은색도금 런너에, 자석에, 빛이 바뀌는 LED 모듈이라든지, 에칭 스티커라든지, 호화로운 재질의 부품들이 많이 들어있어서, 제대로 돈값을 한다는 느낌은 듭니다.

 

네, 일단 이렇게 조립했습니다.
제 취향의 이상적인 비율보다는 하체가 다소 짧긴 합니다만, 전반적인 프로포션과 디테일은 마음에 듭니다. 가동성이 좀 떨어진다고 듣기는 했는데, PG 가지고 과격한 포즈로 갖고놀 일이 뭐 그리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시간에 따라 색이 변하는(색이 변하는 패턴도 4가지 있습니다) LED 모듈 하나로 눈과 가슴에 동시에 빛이 들어오게 돼있고요. 발광 빔 사벨은 이렇게 클리어 빔 부품에 빛이 나게 할 수도 있지만, 백팩에 꽂은 상태로 스위치를 켜면 버니어에 불이 들어오도록 구성돼있습니다.

 

뭔가 unleashed됐다는 느낌적인 느낌으로다가 구석구석 여러 군데 장갑 해치가 열리게 돼있는데요. 열어봤자 내부 기계부품이라기보다는 트러스 프레임 같은 것만 보여서 딱히 해치 오픈의 효과는...

프레임 상태로도 사진을 좀 찍어봤습니다. 기존 PG들도 일부 내부 프레임이 이중으로 돼있는 경우는 있었지만, 이번 PGU 건담의 내부 프레임은 기본이 이중이고 일부는 삼중으로 겹겹이 돼있는 부분도 꽤 됩니다. 그래서 그런지 프레임 상태로도 상당히 멋집니다.

 

이런 멋지고 아름다운 프레임을 장갑 속에만 숨겨놓는 것이 너무 아쉬워서, 외장 장갑을 클리어 버전 부품들로 교체해주었습니다. 본체 부분의 클리어 부품은 내부 프레임이 보여서 좋지만, 무기류는 딱히 프레임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보니 클리어 외장을 씌워놓을 이유가 별로 없겠더군요.

 

아무튼 그런데 외장 부품을 갈아끼우는 과정에서 여러 군데 부품 파손이 있었는데요ㅜㅜ PGU 건담은 전반적으로 부품들끼리의 결합력이 매우 강하고 빡빡합니다. 문제는 부품 간 결합 강도가 부품 자체 내구성보다도 높은 부품들이 일부 있다는 것인데요. 최대한 조심해서 해체를 한다고 했지만, 여지없이 몇몇 부품의 결합 핀들을 부러뜨리고 말았습니다.

 

사진 위 왼쪽은 발등 부품, 오른쪽은 허리 뒤쪽 부품, 아래쪽은 발바닥 버니어 클리어 부품입니다. 발바닥 버니어는 사진 상으로는 잘 눈에 띄지 않지만 가장자리 두께가 얇아서 분해 시 흡집이 좀 생겼습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일지도 모르지만, 분해한 모든 부품들의 결합 핀 길이를 거의 다 1/3쯤 니퍼로 잘라줬습니다. 이 사실을 일찍 알았다면 조립 전에 미리 잘라놨을 텐데 말이죠. 참고로 일부 프레임의 결합 핀 중에는 조립 후 장갑 밖으로 노출되는 것도 많습니다. 도색을 위해 미리 결합핀을 잘라놓을 계획이시라면 주의하셔서 외부로 튀어나오는 핀까지 자르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클리어 플라스틱은 불투명 플라스틱에 비해서 경도는 단단하지만 인장강도가 약해서 더 잘 부러집니다. 클리어 바디 킷의 설명서에도 보면 "재질 특성 상 파손의 우려가 있으므로, 일단 클리어로 조립하고 나면 분해가 불가능하다"는 무시무시한 경고가 써있습니다. 도색하려면 당연히 다 해체해줘야 하는데 말이죠.

 

그래서 클리어 부품들은 더욱 정성 들여서 결합 핀들을 거의 절반 길이로 잘라줬습니다. 워낙에 결합 핀들이 많고 길어서, 반 정도 자른다고 해도 부품이 막 빠져버리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주의에 주의를 거듭했음에도 불구하고 조립조차 하기도 전에 파손돼버린 클리어 부품이 있으니... 발 뒤꿈치의 J7 부품입니다. 런너 구조 상 이 부품을 떼어내려고 하면 부품이 좌우로 밀쳐지는 힘을 받게 되는데, 부품의 정가운데 부분이 깊게 패인 형태라 이곳에 응력이 집중되게 되고, 부러지기 쉬운 클리어 플라스틱 재질과 만나다 보니 엄청 쉽게 부러집니다. 저는 양쪽 클리어 발뒤꿈치 부품 모두 다 런너에서 떼어내는 과정에서 가운데가 똑 부러졌습니다ㅜㅜ PGU가 부품 강도 면에서는 영 perfect하지 못하네요.

 


아무튼 조립기는 이만 마치고 다음번에는 도색 작업기로 찾아뵙겠습니다.
불투명 부품들은 게이트 자국과 눈에 띄는 싱크마크 정도만 안 보이게 사포질하는 간단한 수준의 표면정리만 했고요. 클리어 부품들은 사포를 댔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질 것 같아서, 니퍼와 나이프로 게이트 자국만 다듬는 선에서 자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