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4. 5. 09:37

경제심리학 - 지름신과 행복하게 공존하는 법

우리나라에서 출간되는 번역서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이 책도 원제나 책 내용보다는 '얼마나 잘 팔릴 것 같냐'는 마케팅적 관점에서 한글 제목을 붙인 듯합니다.
'경제'와 '심리학' 모두 요즘 인기있는 키워드잖아요?
그렇지만 이 책은 경제심리학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긴 하지만 '~학'으로 끝나는 제목을 붙일 만큼 전반적인 분야를 커버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경제학에서는 모든 이론의 기반에 '인간은 항상 경제적으로 최선의 선택을 하는 합리적인 존재'라는 가정이 있지만,
본인이나 주위를 둘러보면 알 수 있듯이 실제 인간은 비이성적이고 완벽하지 않은 존재입니다.
이 책은 이러한 인간의 합리적이지 못한 부분을 어떻게 장점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가 하는 부분을 다룬 책입니다.
원제인 'The Upside of Irrationality(비합리성의 긍정적인 면)'는 책 내용을 잘 설명해 주고 있죠.

지름신과의 동행

이 포스트의 제목에 있는 '지름신과 행복하게 공존하는 법'이란 것은 책의 부제가 아니고(진짜 부제는 '경제는 감정으로 움직인다'),
제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이 책의 6장 '적응력과 행복의 비밀' 부분을 저 나름대로 해석한 것입니다.

인간이나 동물은 적응력이 매우 뛰어나죠.
그래서 로또에 당첨된 사람이나 사고로 큰 장애를 갖게 된 사람도 처음에 그 사건을 당했을 때는 엄청난 행복감이나 불행을 느끼지만,
시간이 얼마 흐르고 나면 그 상황에 완전히 적응 돼버려서 행복지수가 일반인들과 별반 차이 없는 상태에 다다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행복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이런 우리 몸(두뇌)의 몹쓸 적응력을 다음과 같이 이용하면 됩니다.
"우리 자신이 행복에 잘 적응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며, 불행에는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적응을 방해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행복한 시간 중간중간에 행복을 조금씩 쉬는 겁니다.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모든 불행을 한꺼번에, 급격하게 겪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현대 사회에서 행복의 원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소비', 즉 '지름'에 적용시켜 보죠.
지르기 전의 기대감에서 행복을 얻든, 지름 행위 자체에서 얻든, 지름의 결과물을 사용함으로써 얻든 간에 지름은 행복의 원천입니다.
이런 지름의 행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원하는 것들을 동시적으로 한꺼번에 확 질러버리는 것보다는
첫번째 작은 지름에 적응되어 쾌감이 잦아들 때쯤 다시 조금 지르고, 두번째 지름에 적응되려 할 때쯤 또 지르는 식으로
조금씩 지속적으로 쉬어가며 지르는 것이 좋습니다.
아래 그래프를 보시면 쉬엄쉬엄 질러주는 편이 한꺼번에 지르는 것보다 지름을 통한 행복의 총합이 더 크고 오래간다는 것을 아실 수 있습니다.


건프라에 비유하자면 전세계 모든 레진 킷과 인젝션 킷을 단 한번에 질러버리는 로또 당첨 모델러보다,
매달 나오는 HG 신제품을 손꼽아 기다려 가며 하나씩 하나씩 사는 서민 취미가가 건프라로 인한 쾌감의 총합은 더 크다는 거죠.
그러니까 한번에 팍팍 질러서 재력을 자랑하고픈 욕망이나 고액 결제시 배송료 면제 혜택 같은 것에 현혹되지 말고,
쉬엄쉬엄, 꾸준히, 참아가며, 조금씩 질러가는 것이 지름신과 행복하게 공존하면서도 패가망신을 피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반대로 불행의 경우 모든 불행을 한꺼번에 겪어버리는 것이 고통의 총량을 줄이는 데 좋습니다.
예를 들어 경제적 타격을 크게 입었을 때 집을 단계적으로 줄여가고, 자동차와 가구 등도 쉬엄쉬엄 하나둘씩 팔아 없애는 것은
상실감에 적응될 때쯤 또다른 상실의 고통이 닥쳐오는 상황이 지속돼서 정신적으로 장기간 힘듭니다.
그냥 과감하게 한번에 사글세 쪽방으로 옮기면서 차와 가구도 한꺼번에 처분하는 편이 처음엔 많이 고통스러울지라도 단기간에 적응이 되죠.

담배나 술을 끊는 것도 단번에 완전히 끊어버리는 게 적응하기 쉬운 겁니다.

비슷한 맥락으로, 지속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제품과 서비스보다 일시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쪽에 돈을 쓰는 편이 만족감의 총량이 크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내구재인 소파의 교체와 일시적인 스쿠버다이빙 여행의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면, 스쿠버다이빙이 낫다는 거죠.
스쿠버다이빙 여행의 경험은 쉽게 적응이 안 되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겠지만, 소파의 만족감은 적응에 의해 약화되기 때문입니다.


다른 장들의 내용에 대해서도 아래와 같이 요약해봤습니다.
제가 보기에 별로 재미 없고 도움이 안 되는 장 같은 경우 생략했고요.

2장 일한다는 것의 의미
노동이란 경제학에서 말하듯이 '사람들이 최대한 피하려 하거나 돈벌이를 위해 마지 못해 하는 행위' 이상의 무엇입니다.
'내가 하는 일이 인류에게 이러이러하게 공헌한다'는 거창한 생각뿐만 아니라
일을 통한 작은 성취감, 몰입에서 얻어지는 작은 만족감 등이 일에 대한 동기를 부여합니다.
반면에 나의 일이 쓸모없어진다든가 그 결과물이 폐기될 경우, 그리고 지나치게 고도로 분업화된 일은 근로의욕을 크게 저하시킨다고 합니다.

3장 IKEA 효과
사람은 자신의 노력이 들어간 물건을 과대평가하기 마련입니다.
이것이 완제품이 아닌 노력이 필요한 IKEA의 반제품 가구가 잘 팔리고, 반다이의 조립식 건프라가 잘 팔리는 이유입니다.
이 IKEA 효과에 대해 좀더 자세히 실험해본 결과 다음과 같은 사항이 밝혀졌다고 합니다.

1. 어떤 대상에 대해 더 많은 노력을 투입할수록 그 대상에 대해 더 큰 애착을 갖습니다.
2. 아무리 많은 노력을 들였더라도 완성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그리 애착을 갖지 못합니다.
3. 우리는 자신이 만든 것들에 대해 진심으로 더 높은 가치를 매기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높게 평가하기를 기대합니다.

반다이 MG(마스터 그레이드) 건프라가 바로 1번과 2번의 절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제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조립이 복잡해서 꽤 노력이 필요하지만, 색분할이 잘 되어 있고 부품도 딱딱 잘 맞기 때문에 누구든지 완성할 수 있습니다.
스케일 모형들이 건프라보다 인기가 적은 이유는 조립은 더 편하지만 완성하려면 필수적으로 도색을 해야 된다는 넘기 힘든 벽 때문 아닐까요?
그리고 3번 효과를 감안하시고, 내 작품의 객관적인 가치는 내 생각보다 (어쩌면 상당히) 낮다는 사실을 인지하시기 바랍니다.
적어도 옆자리 사람에게 자기 아이들 사진을 계속 보여주며 "귀엽죠? 귀엽죠?"하고 고문하는 사람이 되진 마시길...

4장 NIH 신드롬
IKEA 효과의 '아이디어 버전'입니다.
NIH(not invented here) 신드롬이란 자신이 만들어내지 않은 아이디어는 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인데, 누구나 갖고 있습니다.
자신에게도 NIH 성향이 있다는 것을 항상 숙지하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사고를 하시기 바랍니다.
NIH 성향이 강한 사람을 설득할 땐 직접 말하는 것보다는 힌트를 줘서 그 사람 본인이 생각해낸 것처럼 착각하게 하는 꼼수가 통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단어의 나열을 제시하고 그것으로 문장을 만들게 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그것이 자기가 생각해낸 문장이라고 착각한다고 합니다.

5장 복수의 정당화
피해나 배신을 당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복수를 합니다.
인간의 복수심이라는 본능은 '사회적 동물'로의 진화 과정에서 배신에 대한 억제력으로 작용해왔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복수를 해봤자 자기에게 전혀 득 될 것이 없는 상황에서도 비경제적인 복수를 행하기 마련입니다.
복수의 비합리적인 면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 한다'는 속담이 말해주듯이, 복수의 대상이 본인에게 피해를 준 사람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리고 (진심이 들어간) 상대방의 사과 한 마디만으로도 복수심은 많이 누그러뜨릴 수 있습니다.

복수심과 분노를 무조건 참는 것은 정신건강 상 안 좋겠습니다만,
상해, 기물파손, 화풀이 같은 파괴적인 방법보다는 복수심을 자기 발전을 기회로 삼는 건설적인 방법이나 '소심한 복수' 등으로 풀기 바랍니다.
그리고 정치판처럼 속임수와 발뺌이 생존에 필수적인 업종이 아니라면, 상대방에게 복수심을 일으킬만한 일을 했을 때는 사과하도록 합시다.

7장 외모와 연애의 상관관계
이 장에서 다룬 내용은 누구나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는 얘기일 겁니다.

1. 외모의 우열을 평가하는 기준은 모든 사람들이 거의 동일합니다.
2. 외모가 부족한 사람들은 외모 이외의 다른 특성들을 중요하게 여기는 방식으로 현실에 적응합니다.
3.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이성의 외모를 더 따지며, 자신보다 월등한 외모의 이성에게 대쉬할 확률도 높습니다.

결론적으로 이성을 볼 때 가장 외모를 중시하는 족속은 '꽃미남'이란 겁니다.
꽃미남 좋아하시는 여성분들은 명심하시길^^

8장 시장이 실패할 때
현대사회에선 산업화와 유통혁명을 통해 물건들을 쉽게 구입할 수 있고, 상품들의 정보도 많이 얻을 수 있지만...
연애 시장은 아직도 낙후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공부하랴, 일하랴 바빠서 연애 상대를 찾기 힘들어하고 있지만 상품시장처럼 구조화되고 효율적이고 안전한 쇼핑은 불가능합니다.
연애라는 것은 데이트처럼 상대방과의 경험 공유를 통해 알아가는 '경험재'임에도 불구하고
'결혼해 듀X'로 대표되는 온라인 미팅 사이트에서는 정량적이고 검색 가능한 키, 재산, 학력 같은 정보만 알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온라인으로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연애 사업을 시작한다면 대박 아이템이 될 수도 있을 듯...

9장 동정심의 진화
사람들의 동정심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근접성, 생생함, 의미인식의 세가지가 필요합니다.
경제적 도움이 필요한 한 소녀의 사진을 보여주고(근접성) 딱한 생활고 이야기를 들려주면서(생생함),
천원이면 이 소녀의 하루 식사가 해결된다(의미인식)는 식으로 얘기하면 동정심이 동해서 흔쾌히 천원을 기부할 사람은 많겠지만...
에이즈로 죽어가는 수천만명의 사람들을 위해 기부하라고 해봤자 그들에 대해서는 근접성과 생생함 없이 막연하게만 느껴지는 데다가,
내가 돈을 기부한다고 죽어가는 에이즈 환자를 살릴 수 있다는 의미인식도 없기 때문에 기부하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때는 근접성, 생생함, 의미인식을 강조하시고,
반대로 사람을 계산적으로 만드는 통계 숫자나 그래프 같은 것은 제시하지 마시길...

10장 일시적인 감정의 후유증
사람들은 분노 같은 일시적인 감정에 휘말려 충동적으로 행동할 때가 있습니다.
평정심 상태에서는 하지 않을 법한 행동들을 하죠.
문제는 그런 행동들이 우리의 장기적 의사결정, 더 나아가 습관이나 성격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기분이 나쁜 상태로 회의실에 들어갔더니 팀원들끼리 자유롭게 잡담하는 것이 시끄럽게 느껴지더란 말이죠.
그래서 "회의 시간엔 조용히 하라"고 팀원들에게 일장연설을 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기분이 나아진 다음에도 이 사람은 향후 회의에서 지속적으로 자유로운 잡담을 금지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현상을 저자는 '자기무리짓기(self-herding)'이라고 이름지었는데요.
어떤 의사결정과 행동을 할 때 자신이 과거에 했던 유사한 행동을 따라하는 경향을 말합니다.
사회심리학에서 말하는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의 일종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이것은 행동과 생각 사이에 불일치가 생길 경우 자신이 행한 행동에 맞춰 생각을 바꾸는 인간의 심리적 경향입니다.

아무튼 뜻하지 않는 방향으로 성격이 바뀌고 싶지 않다면,
감정에 휘둘린 상태에서는 의사결정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