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01 21:14

어와나 그랑 프리 (Awana Grand Prix) 자동차 제작

아들내미 학교에서 '아빠 캠프'라는 행사의 일환으로 나무를 깎아서 자동차를 만들고 경주하는 이벤트가 있었습니다.
속도경쟁만 하는 거라면 스피드에 올인해서 아무렇게나 만들겠지만 디자인 부문에도 시상을 하기 때문에 예쁘게 만들어야 합니다.
프라에서 손 놓은 지 어언 5년이 넘었지만 그래도 나름 모형에 손 대봤다는 인간으로서 허투루 대충 만들 수 없죠.
그렇게 다시 바람붓을 잡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목각 자동차 경주는 어와나(Awana)라는 개신교 아동선교단체에서 많이들 하고요,
인터넷에서도 Awana Grand Prix로 검색하면 많은 자료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재료는 아래 사진과 같이 심플하고요. 저 나무토막을 깎고 다른 재료를 붙이고 해서 자기가 원하는 디자인의 자동차를 만든답니다.

아빠캠프의 테마가 '아빠 냉장고를 부탁해'였기 때문에
저희는 냉장고를 부탁해 프로그램에 나오는 셰프 유니폼을 디자인 모티브로 하기로 했습니다.

아래와 같이 대략적인 스케치와 상세 작업설계도를 그렸습니다.


일단 나무를 깎아야 하는데, 이쪽은 하는 방법도 모르고 공구도 없는 관계로 목공방에 의뢰를 했습니다.

그리고 180번 사포로 갈아내서 좀더 모양을 잡고, 400번 -> 600번 순서로 표면을 정리했습니다.
스카프를 상의에 고정하는 고리는 0.5mm 프라판을 휘어서 만들고 순간접착제로 붙였습니다.

이렇게 목재를 다뤄보니 플라스틱이야말로 정말 최적의 모형 소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됐는데요.

나무에는 나뭇결이라는 골치아픈 성질이 있더군요.
유니폼 옷깃 모양을 나타내는 패널라인을 파려고 해도 나무의 섬유가 결 방향으로만 쪼개지려고 해서 패널라인이 마구 망가집니다.
그리고 나뭇결 무늬 때문에 아무리 고운 사포로 사포질을 해도 표면이 매끈해지지 않고요.
나뭇결에 수직 방향인 표면은 액체를 너무 잘 흡수합니다. 도료를 그냥 쫙쫙 흡수해서 표면에 남아나지 않더군요.

목공의 '목'자도 모르지만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플라스틱 모형의 표면 정리 테크닉과 용품들을 무식하게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일단 피니셔즈 멀티 프라이머를 뿌리고 그 위에 GSI크레오스 프라이머 서페이서를 올려줬습니다.

목재가 액체를 흡수하는 성질 때문인지 비싼 멀티 프라이머를 반 병이나 쏟아붓게 됐는데,

목재에는 액체 프라이머를 쓰면 안 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서페이서를 뿌리면 사진과 같이 표면의 적나라한 나뭇결 무늬와 다 깨진 패널라인이 드러나게 되는데요.

피니셔즈 락카 퍼티를 전체적으로 바르고 사포로 다 갈아내고, 다시 프라이머 서페이서를 뿌렸습니다.

결국 다음과 같은 꽤 봐줄만한 매끄러운 표면을 얻기까지 상당한 노가다가 필요했습니다.

도색은 외관은 펄 화이트, 운전석은 검정, 바닥은 은색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펄 화이트는 피니셔즈 파운데이션 화이트 위에 GSI크레오스 문스톤 펄을 올렸는데요.
이 문스톤 펄이 그냥 순수한 하얀 펄이 아니고 약간 아이보리-베이지 느낌을 띄며 바탕의 흰색을 어둡게 톤 다운시키더라고요.
그냥 하얀 펄 느낌을 내려면 문스톤 펄이 아니라 동사의 다이아몬드 크리스털을 올려야 하나 봅니다.

나중에 유니콘 건담 만들 때 참고해야 할 듯...

운전석은 가이아노츠 미드나이트 블루, 바닥은 SMP 수퍼파인 알루미늄으로 칠했습니다.

그리고 차체 왼쪽에 마스킹 테이프 노가다로 셰프들 유니폼 왼팔에 있는 냉장고를 부탁해 엠블렘을 그렸습니다.

실물로 볼 때는 그럭저럭 괜찮아 보였는데, 사진으로 찍어보니 조금 허접하네요, 흐.

아들내미 이름과 번호를 데칼로 붙여주었고, 유광 마감을 해줬습니다.

원래는 GSI크레오스 수퍼클리어 III 마감제를 쓸 계획이었는데, 5년이라는 보관기간 동안 변질이 돼버렸더라고요.
다른 도료 구입 시 증정품으로 받았던 IPP 수퍼클리어가 있길래 그걸 사용했습니다.
차량용 맥과이어 얼티밋 컴파운드와 타미야 컴파운드 Finish로 열심히 문대서 광택을 좀더 내줬습니다.

운전기사 피규어와 스티어링 휠은 레고를 이용했고요.
유니폼의 검정색 스카프 부분은 아이가 갖고 놀던 검정색 플레이도우라는 지점토 같은 재료로 빚어서 붙여줬습니다.

바퀴도 마스킹 도색으로 휠 부분에는 프라이머를 뿌리고 가이아노츠 스타 브라이트 실버를 올려줬는데 좀 망쳤습니다.
타이어의 글자 부분은 플랫 화이트 에나멜을 붓에 묻혀서 강조해줬고요.

바퀴를 생각 없이 꼽으면 바퀴와 차체 간 마찰이 감속 요인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플라스틱 파이프를 잘라서 차체와 바퀴 사이에 끼워줬습니다.
그리고 바퀴가 잘 돌아가도록 바퀴축을 전동 드릴에 꽂아서 돌리면서 사포질도 해줬고요.
바퀴와 축 사이에 흑연가루를 뿌리면 윤활제 역할로 좋다고 하여 집에 굴러다니는 2B 연필의 심을 칼로 긁어서 뿌려줬습니다.

그리고 바닥면에는 무게추를 붙여줬습니다.
동력이 없는 자동차이다 보니 비탈길에서 중력으로 가속해서 속도경쟁을 하게 되는데요.
가속과 속도 유지를 위해서 무게는 무거울수록 좋고, 무게 중심도 뒤쪽이고 낮을수록 좋나 봅니다.
하지만 150g이라는 계체량 제한이 있어서 최대한 150g에 가깝도록 무게 추를 붙여줬습니다.
실제 차량의 휠 밸런스 조정에 사용되는 쇳덩어리들을 순간 접착제로 붙여줬네요.

이렇게 해서 완성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아무런 상도 받지 못했습니다.

속도 경쟁은 무게중심과 공기저항을 속도에만 최적화해서 올인한 다른 자동차들에게 밀릴 수밖에 없었고요.
너무 광택에만 집중해서 디자인이 너무 심플했기 때문인지 한 반에 3명씩 주는 디자인 상도 못 받았습니다.

디자인 상 심사위원들은 아마도 냉장고를 부탁해 셰프 유니폼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겠죠.


결국 이번 작업에서 남은 거라곤...

플라스틱이라는 재질의 우수성을 깨닫게 된 것과, 5년 동안 먼지만 쌓여있던 도색 용품들을 다시 꺼내는 계기가 된 정도 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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