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3. 20. 11:26

먹선 색상에 관한 고찰

RG 스트라이크 먹선 작업을 하면서 처음으로 타미야 Panel Line Accent Color를 써보게 됐는데요.
Panel Line Accent Color 그레이의 색이 너무 밝아서 처음엔 걱정이 됐습니다.
이게 건담마커 회색 먹선펜보다 밝은 것은 물론이고, 거의 서페이서의 색과 맞먹을 수준의 밝은 회색입니다만...
'먹선'이라는 어감상 왠지 검정에 가까워야 할 듯한 느낌이고, 제가 지금까지 넣어왔던 회색 먹선도 검정색에 가까운 회색이었거든요.

그런데 이게 실제로 먹선을 넣어놓고 보니 이런 밝은 회색 먹선이 흰색 바탕엔 꽤 괜찮게 잘 어울리더군요.


생각난 김에 먹선이 검정색이 아닌 더 흐린 색이 잘 어울리는 이유에 대해 고찰해봤습니다.
지금까지는 남들이 그렇게 하니까 생각 없이 따라서 흰색 바탕에는 회색 먹선을 넣고, 빨간색이나 노란색 바탕에는 갈색으로 넣었는데요.
바탕색 + 검정색의 혼합색으로 먹선을 넣는 것의 과학적인 근거는 대체 무엇일까 이번 기회에 조사도 해보고 또 곰곰이 생각도 해봤습니다.
결국 딱히 적절한 자료는 찾지 못했지만, 그냥 제 생각에^^ 대략 세 가지 정도 이유를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물의 패널 라인이라는 것은 조각조각 나뉘어진 외장 패널(판때기)들 사이의 틈입니다.
가장 흔하게는 자동차를 보면 문 틈이라든지 펜더나 범퍼 같은 패널들 사이의 틈새가 패널 라인이죠.

이 차의 패널 라인 근처에서 반사된 빛이 우리 눈에 어떻게 보일지 단면도로 나타내 보면 아래 그림과 같습니다.

  1. 빛이 외장 패널 표면에서 정상적으로 반사되어 우리 눈에 들어오는 경로를 나타냅니다.
    이부분들의 색상은 정상적으로 밝게 잘 보이겠죠.

  2. 패널 옆면 부분은 그림처럼 패널에 의해 그늘이 지거나, 그늘이 지지 않는 경우라도 빛이 패널 표면보다 비스듬히 비치기 때문에
    1번으로 표시된 패널 표면보다 살짝 어둡게 보이는 것이 보통입니다.
    매우 드문 상황으로 조명 자체의 방향이 아주 비스듬할 경우엔 패널 옆면이 수평 표면보다 더 밝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위 사진에서 도어 뒷부분의 패널 라인 같은 상황이죠.

  3. 패널 라인 사이의 물리적인 틈새는 패널 속의 내부 부품에서 반사된 빛이 보여야 하지만,
    대개의 경우 패널의 그림자 때문에 내부까지 빛이 안 닿고, 따라서 검게 보입니다.

즉, 실물의 패널라인은 패널 옆면(2번)과 틈새 내부(3번) 때문에 빛이 덜 반사되는 관계로 패널 표면(1번) 부분보다 어두워 보이는 것입니다.

모형의 패널라인은 위 그림과 같은 내부구조를 갖지 않고, 부품 표면에 슬쩍 홈만 파여있는 게 일반적입니다.
이런 살짝 파인 홈은 그냥 놔두면 실물 패널 라인만큼 어두워 보이지 않기 때문에 '먹선'을 넣게 되는 것이고요.

실물에서 3번의 틈새 부분은 검정색으로 보이는 것이 맞습니다만, 2번의 패널 옆면은 패널 표면 색에 비해 약간 어두운 정도입니다.
그래서 전체적인 먹선 색깔을 최대한 실물의 패널 라인 톤과 비슷하게 하기 위해서는...
검정색과 패널 옆면의 색을 섞어서 혼합색으로 먹선을 넣어야 맞는 것이 아닐까요?

여담으로 저는 다른 분들 작업 중에 가장 이해 안 되는 것이... 어두운 색 바탕에 밝은 색으로 패널 라인 먹선을 넣는 것입니다.
어떻게 패널 라인이 패널보다 더 밝을 수가 있을까요? 몸 속에서 빛이라도 새나오는 설정일까요?

그리고 또 한 가지, 패널 라인의 굵기와 스케일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시죠.
자동차 패널라인의 경우 폭이 굵어봤자 5mm를 넘지 않습니다.
병기라든지 항공기 같은 경우 더 기밀성이 높아야 하기 때문에 더 패널라인이 좁아야 하겠지만, 편의 상 5mm라고 치도록 하죠.

오토 모형 같은 경우 1/24 스케일이니까 스케일에 맞게 0.2mm 정도의 패널라인을 파놓고 검정색으로 먹선을 넣어도 크게 문제가 안 됩니다.
그렇지만 건담 프라모델 같은 경우 1/100, 1/144와 같은 소축척 모델들이 대부분인데...
스케일에 맞는 0.05mm, 0.035mm 같은 머리카락보다도 얇은 패널라인은 플라스틱 재질과 인젝션 공정 상 불가능합니다.
실제로 반다이 건프라를 보면 패널라인 폭은 0.2~0.3mm 정도 되는 것 같더라고요.
여기에 검정색으로 먹선을 넣는다면 '패널라인 폭이 막 20mm, 40mm 되는 실물 건담'의 모형이 되기 때문에 아무래도 부자연스럽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실물 비율보다 훨씬 굵게 나온 건프라의 패널라인들을 어떻게 하느냐?
결국 바탕색과 검정색의 혼합색 먹선이 해법 아닐까 합니다.
이론적으로는, 예를 들어 실물보다 4배 굵은 패널라인의 색은 검정색 : 바탕색 = 1 : 3으로 혼합된 색이 되어야 자연스럽습니다.

사진 이미지를 축소할 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패널라인 굵기가 이미지의 픽셀 크기보다 작아질 정도로 사진을 축소한다면, 결국 픽셀 굵기의 혼합색 선이 남는 거죠.
아래 왼쪽 사진은 위 자동차 사진을 축소한 건데요.
오른쪽의 좀더 크게 표시한 사진을 보시면 더 확실히 알아보시겠지만
위 사진에서 새까맣게 보였던 앞 펜더 패널 라인들조차 차체의 은색과 혼합되어 회색처럼 돼버린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이유로 착시현상의 일종인 명도대비도 무시할 수는 없겠습니다.
밝은 바탕에 그어진 어두운 선은 명도 대비에 의해 실제 색보다 더 어둡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흰 바탕에 진한 회색의 먹선을 그으면 거의 검정색으로 먹선을 그은 것과 다름 없게 보입니다.
그래서 흰 바탕에는 Panel Line Accent Color의 회색 같은 밝은 회색 먹선 정도가 딱 알맞은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반면에 어두운 바탕의 패널라인은 명도대비가 거의 없어 워낙에 먹선이 잘 안 보이고...
그래서 귀찮게 바탕색과 검정색을 혼합할 필요 없이 그냥 검정색으로 먹선을 넣어도 괜찮은 것이고요.


뭐, 이 정도로 먹선 색상에 대해서 과학을 가장한 추측성 고찰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