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널 판타지 XIII(이하 FF13)을 드디어 뽕을 뽑았습니다!
제가 이리저리 시행착오도 많이 하고, 컨트롤러 붙들고 졸아서^^ 시간이 좀 많이 걸렸지만
70시간 만에 엔딩을 봤고, 120시간 만에 모든 트로피를 땄습니다.
(아다만 노가다 할 때 리셋을 많이 했기 때문에 실제 플레이 시간은 130시간을 훌쩍 넘을 겁니다)
이것이 바로 아시는 분만 아실... FF13의모든 것을 통달했다는 플래티넘 트로피의 증거화면입니다.
(TV캡처보드 같은 건 없어서 카메라로 직접 찍었습니다)
이미 ☞초기에 몇 시간 플레이해보고 뿅 가서 쓴 소감문☜을 끄적이긴 했지만...
이 정도로 뽕을 뽑게 플레이를 해봤으니 리뷰 한 마디 정도 다시 정리해서 쓸 자격이 있다고 봐도 되겠죠^^?
확실히 끝까지 해보니 단점들도 눈에 많이 띄더군요.
그렇지만 제 생각에는 장점들이 단점을 커버하고도 남는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인 10점 만점의 감점제 평가라면
영상 10점, 전투 시스템 10점, 게임 편의성 10점, 음악 10점, 스토리 8점, 내용 볼륨 8점, 자유도 7점 이런 식으로 9점짜리 게임이 되겠지만,
이런 식의 감점제 평가는 FF13에는 너무 불공평한 평가입니다.
저라면 달롱넷에서 MG 건프라 평가하는 식으로
영상 14점, 전투 시스템 12점, 게임 편의성 11점, 음악 10점, 스토리 8점, 내용 볼륨 8점, 자유도 7점 이렇게 해서 10점을 주겠습니다.
(억지스럽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부문에 따라 완성도가 들쭉날쭉한 현상은 제작 스탭들의 면면을 보면 어느 정도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D모 재벌그룹의 광고에도 등장하듯이 '글로벌 기업의 경쟁력은 기술과 네트웍이지만 그것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사람'인 게지요.
FF13에서 잘 됐다고 생각되는 부분들 중심으로 리뷰해가면서 한 번 각 부분의 만든 이들에 대해서도 살펴보겠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영상과 음악에 대해서는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보여드리는 것이 낫겠지요(출처: YouTube).
(좀더 고화질의 영상을 원하신다면 ☞이쪽☜으로)
최초의 3D 파이널 판타지였던 FF7 이후로 영상의 퀄리티란 것은 보통
셰이딩, 텍스처 맵핑, 광원효과 같은 3D 컴퓨터 그래픽스 기술의 퀄리티를 말하는 것이었는데 반해...
FF13은 이미 3D 그래픽스 기술은 왈가왈부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완성도를 달성한 후에
장면 구성이나 앵글, 인물들의 연기가 얼마나 자연스러운지와 같은 영상 컨텐츠 자체에 대해 논해야 할 수준이 되었고,
위 동영상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컨텐츠 자체로서의 퀄리티도 일품입니다.
이전의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와는 이미 비교 대상 자체가 안 되고,
3D 애니메이션 영화인 Final Fantasy : The Spirits Within이나 FF7 Advent Children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 않은 영상미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 이런 고수준 영상의 가장 큰 공로자는 스토리보드 디렉터인 카나다 요시노리(金田伊功) 씨입니다.
스토리보드 디렉터는 게임 스토리와 관련 있는 직책은 아니고
글로 쓰여진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스토리보드'라고 하는 '그림으로 그려진 시나리오'를 만들고 영상화를 감독하는 사람입니다.
한국에서 보통 쓰는 말로는 스토리보드 → 콘티, 스토리보드 디렉터 → 작화감독 쯤 되겠습니다.
카나다 요시노리 씨는 "이 사람 없이 재패니메이션의 역사를 말할 수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유명한 천재 애니메이터입니다.
이분이 원화를 그린 애니메이션 작품으로는 게게게의 키타로, 큐티허니, 우주전함 야마토, 캔디캔디, 은하철도999, 기동전사 건담, 천년여왕에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부터 원령공주에 이르기까지... 리스트만 A4지 두 장 가득 찰 겁니다.
FF13 이벤트 무비의 앵글 전환이라든가 액션 같은 것은 완전 카나다 스타일입니다.
격한 액션과 정지된 포즈가 번갈아 교차되고, 카메라 앵글이 현란하게 회전되고 줌 되는 것이 바로 그 특징입니다.
카나다 스타일은 원래 80년대에 애니메이션 제작비 절감을 위해 고안된 것인데요,
부드러운 동작에는 1초에 24매의 그림(셀화)이 필요하지만,
정지 동작과 줌은 셀화 1장만으로, 빠르고 격한 액션은 적은 수의 셀화로도 표현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화면 구성은 자칫 잘못하면 조잡하고 어지러워 보일 수 있는데(카나다 씨의 아류 애니메이터들의 작품들은 좀 그렇습니다),
원조인 카나다 씨의 작품은 눈부실 정도로 화려하면서도 시원한 느낌입니다.
카나다 씨의 손을 거쳐 HD 풀 프레임 3D 애니메이션으로 태어난 FF13 이벤트 영상은 현란하면서도 세련되게 구성되어 있고,
물 흐르듯 부드러운 미국식 3D 애니메이션에서는 볼 수 없는 절도있는 힘과 카리스마가 느껴집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카나다 씨는 심근경색으로 작년 7월 작고하셨습니다(향년 57세).
이런 이유에서 FF13과 동일한 스타일의 영상은 다시는 볼 수 없을 겁니다.
엔딩 근처 무비에서 작붕(?)이 좀 있는 듯한 느낌인데 설마 카나다 씨의 사망과 관련 있는 건 아니겠죠?
전투 시스템에 있어서는 무엇보다 롤(Role = 역할)과 옵티마(영문판에서는 Paradigm)라는 개념이 정말 절묘함 그 자체입니다.
FF13 전투 시스템의 기본은 이토 히로유키(伊藤裕之) 씨가 FF4에서 도입하여 지속적으로 변형 발전한 Active Time Battle(이하 ATB)이라는 것입니다(스퀘어에닉스는 이 ATB에 대해 특허도 갖고 있습니다).
ATB는 '시간이 실시간으로 흘러가는 커맨드 입력식 전투방식'으로,
스피디하고 긴장감 있으면서도 전략적인 전투가 가능한 시스템이죠.
롤과 옵티마라는 것은 한 마디로 '스피드를 극한까지 추구한 ATB'를 가능하게 하는 AI(인공지능)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롤과 옵티마에는 AI의 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고 그 외에도 몇 가지 전략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전투 속도를 느리게 하는 제일의 요인은 시시콜콜하게 파티원들의 모든 행동과 타겟을 이것저것 커맨드로 입력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스피드를 추구할 경우 파티원들이 저 혼자 알아서 행동해줄 수 있는 AI가 필연적으로 요구됩니다.
드래곤 퀘스트 팬들에겐 미안하지만 드래곤 퀘스트에 있는 작전(さくせん)이라는 이름의 AI는
AI 작전의 종류가 극단적인 것들(예: MP 신경쓰지 말고 무조건 최강 공격, 절대 MP 쓰지 말 것, 닥치고 HP 회복) 밖에 없고,
대체로 머리가 나쁘고, 바꿔주기가 너무 불편합니다.
사실 대부분의 일본식 롤플레잉 게임(JRPG)에서 AI는 필수적인 것이 아닌 장식에 불과하고, 거의 이런 식이죠.
FF12에서도 갬빗 시스템이라고 하는 AI가 존재했는데 이건 인간적으로 너무 복잡했습니다.
예를 들면 자신이 HP가 30% 이하이면 회복하고, 아니면 HP가 40% 이하인 동료가 있으면 회복시켜 주고,
아니면 바커스의 술이 10개 이상 있으면 하나 쓰고, 아니면 HP1000 이하인 적이 있으면 그놈부터 때리고,
이도저도 아니면 리더가 노리는 적을 때려라... 이런 식으로 다단계에 걸쳐 일일이 세세하게 플레이어가 지정해 주는 식이었죠.
FF13의 AI는 훨씬 직관적이고 간단해서, 리더 이외의 동료 캐릭터에게 롤(역할)을 지정해주고 알아서 행동하게 합니다.
넌 이러이러한 기술로 누구를 공격해라, 넌 무슨무슨 마법을 써라 이렇게 세세하게 지시하는 것이 아니고,
너는 어태커 역할이다, 너는 힐러 역할이다 이런 식으로 맡기는 건데요.
드래곤퀘스트의 작전과 비슷하지만 훨씬 똘똘한 인공지능으로 상황에 맞추어 웬만큼 플레이어가 바라는 대로 실시간으로 행동해줍니다.
리더가 노리는 적에 집중 공격을 해서 빨리 브레이크시키는 전법을 사용하고, 적들이 여럿 몰려있을 경우에는 범위 공격을 해주고,
마법이 약한 적에게는 마법으로, 불 속성에 약한 적에게는 불로 공격을 할 줄 알고,
적이 강력한 번개 속성의 공격을 하는 놈일 경우에는 번개에 대한 배리어 마법을 써준다든지 하는 거죠.
리더의 행동은 매번 입력해야 하긴 하는데, 기본 위치의 메뉴를 선택하면 리더의 행동도 AI가 알아서 골라맞춰줍니다.
그리고 AI 알고리즘을 아주 신속하고 편하게 바꿀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옵티마(= 파티원들의 롤의 조합) 시스템입니다.
롤들을 일일이 한사람한사람 찾아서 전환하는 것도 스피디한 전투에 방해가 되니까
전투에 들어가기 전에 롤의 조합인 옵티마를 여러 개 미리 설정해 놓고
전투 중에 버튼 하나로 옵티마를 선택해서 세사람의 롤을 한꺼번에 바로바로 전환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AI가 믿을만하기 때문에 결국 대부분의 전투에서 플레이어는 옵티마 체인지에만 관여하고 세세한 사항들은 다 AI에 맡기게 되는데요,
전투 시스템과 밸런스 자체가 옵티마 체인지하는 것만으로도 바빠서 지루할 여지가 없도록 잘 꾸며져 있습니다.
중반 이후부터는 타이밍 좋게 옵티마 체인지를 하지 않으면 자코스러운 적들에게도 파티가 전멸되는 상황도 발생하고,
옵티마 체인지를 제대로 운용하는 것이 게임 진행의 키가 됩니다.
이런 완성도 높은 FF13의 전투 시스템 제작을 총지휘한 사람은 츠치다 토시로(土田俊郎) 씨로,
올드 게임 팬이라면 다들 아실 만한 초아니키(超兄貴), 중장기병 발켄, 아크 더 래드, 프론트 미션 시리즈 같은 게임의 프로듀서였습니다.
이런 게임 전체의 제작을 총괄할 만한 역량을 가진 인물이 FF10으로 연습 게임 한 번 뛴 후 FF13의 전투 시스템을 맡았으니...
대단한 것이 나오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요.
FF13의 소환수가 변신로봇 같은 형태를 가지는 것도 어쩌면 프론트 미션 같은 SF메카물을 만들어 온 츠치다 씨의 영향일지도 모릅니다.
FF13의 음악은 모든 곡을 하마우즈 마사시(浜渦正志) 씨가 작곡했습니다.
하마우즈 씨는 FF10에 서브 컴포저로 참여했었고,
더지 오브 케르베로스 FF7, 초코보의 이상한 던전, 사가 시리즈 등의 음악을 작곡해 왔었더군요.
위 동영상에 깔린 FF13의 주제가 '君がいるから(네가 있으니까)'도 하마우즈 씨의 작곡이고,
게임 중에 등장하는 모든 곡들이 파이널판타지 시리즈 사상 최초로 풀 오케스트레이션되어 있습니다.
파이널 판타지의 올드 팬이시라면 우에마츠 노부오(植松伸夫) 씨의 오묘한 선율이 그리우실 텐데요.
이분은 FF12 제작 중에 스퀘어에닉스를 떠나 따로 회사를 차렸습니다.
그래서 FF12까지는 삽입곡 같은 형태로라도 우에마츠 씨의 음악을 들을 수 있었는데, FF13에는 전혀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우에마츠씨가 작곡한 크리스탈의 프레류드, 파이널판타지의 테마, 승리의 팡파르 같은
파이널 판타지의 트레이드마크 격인 곡들이 FF13에서 완전히 삭제되었고, 남은 건 '초코보의 테마' 정도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FF13의 곡들이 안 좋은 것은 아니고요.
제가 음악에 대한 전문지식은 짧아서 구체적으로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주제가만 들어봐도 상당히 좋고, 게임 스토리와도 참 잘 어울리지 않습니까?
여러 가지 다른 스타일로 편곡돼서 게임의 곳곳에 쓰인 하마우즈 씨의 새로운 테마곡 'FINAL FANTASY XIII ~誓い~'나
전투 배경음악 '閃光' 등 모두 파이널 판타지스러운 익숙한 느낌이 나면서도 상당히 좋습니다.
하마우즈 씨도 15년이나 스퀘어에닉스에서 게임음악을 만들어 왔으니
"파이널 판타지의 음악이란 어떤 스타일이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는 거겠죠.
맛뵈기로 파이널 판타지 13 사운드 트랙(Original Sound Track, OST) 수록곡 몇 곡 들어보시죠.
이상은 FF13의 대표적인 장점이었고, 반대로 FF13의 대표적인 단점이라면
낮은 자유도의 일방통행식 진행, 파고들 요소가 적은 볼륨 부족 문제, 뒤끝이 개운치 않은 스토리의 3가지를 들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FF13의 단점들은 왠지 '조급한 멀티 플랫폼 지원' 때문에 초래된 일 아닌가 생각 됩니다..
FF13을 PS3의 블루레이 디스크 전용으로 낸다고 2009년 발매를 목표로 계속 열심히 개발중이었는데,
뜬금없이 스퀘어에닉스의 와다 요이치(和田洋一) 사장이 2008년 여름에 FF13을 멀티 플랫폼으로 XBOX360으로도 낸다고 발표했더랬습니다.
전세계 PS3의 보급률이 기대 이하이기 때문에 개발비를 회수하려면 멀티 플랫폼이 불가피하다는 논리였지요.
그런데 PS3의 블루레이 디스크로는 한 장짜리 게임이지만
XBOX360 용의 DVD로 개발을 하게 되면 용량 문제로 DVD 3장 이상에 나눠넣어야 될 것이고,
한창 개발중인 게임을 일년 남짓한 짧은 기간 안에 멀티 디스크에 맞게 바꾸는 것은 일방통행식 진행 말고는 답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XBOX360에서 게임 초반의 장소에 돌아갈 때마다 플레이어에게 매번 DVD를 갈아끼우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 증거로 PS3 판을 보면 1장부터 10장까지는 100% 일방통행식 진행이고, 클리어 후에도 11~13장에서 가봤던 곳은 갈 수 있는데,
1~10장에서 지나쳐온 곳들은 갈 수 없습니다(6장 같은 곳은 꼭 한 번 다시 가보고 싶은데 말이죠).
이건 아마도 XBOX360판에서 11장~13장이 DVD 한 장에 들어가는 분량이라서 그에 맞춘 것이라고 보입니다.
이 추측을 바탕으로 생각해보면 시간은 없는데 멀티 디스크 게임으로 바꾸려다 보니 스토리가 좀 꼬였다든가,
게임 본편 수정하는 데만 해도 시간이 오래 걸려서 추가로 파고들 만한 요소를 제대로 만들 시간이 없었다든가 하는 식으로
상황이 얼추 들어맞습니다.
뭐 이유야 어떠하든지 간에 FF13은 밸런스가 잘 잡힌 게임이라기보다는
눈에 잘 띄는 장점과 눈에 잘 띄는 단점을 모두 갖고 있는 게임입니다.
그런데 위에서도 얘기했지만 주관적인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한다고 하더라도
영상, 전투 시스템, 편의성, 음악, 그리고 캐릭터들이 입체적으로 얽힌 초중반 스토리 등의 장점들이 단점들을 커버하고도 남는다고 봅니다.
FF13에 대해 가타부타 말이 많은 것은 근원적으로는 부문 별로 들쭉날쭉한 퀄리티 탓이겠지만,
만족하는 사람들은 가만히 있지만 실망한 사람들은 넷 상에서 목청을 높이는 현상에 의해 단점만 너무 부각되고 증폭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쨌든 FF13은 PS3나 XBOX360에서 구현할 수 있는 최신의 기술과 장인 정신을 집약해서 만든 현세대 최고 수준의 JRPG이며,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의 명성과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작품입니다.
FF13은 "남들이 아무리 재미 있다 하더라도 일방통행 식의 JRPG는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안 한다"는 분 아니라면 누구에게나,
특히 라이트 유저 층에 많은 재미와 감동을 선사해 줄 멋진 게임이라고 결론 내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FF13은 괜찮다고 치고,
과연 앞으로도 계속 이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가 잘 지속될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은 참 걱정이 많습니다.
21세기 들어와서 파이널 판타지라는 게임의 제작은 사건 사고도 많고 우여곡절도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우선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의 개발자들이 속속 스퀘어에닉스를 떠나고 있습니다.
비디오 게임을 오래 하신 분들은 아실 텐데,
'드래곤퀘스트' 하면 프로듀서 호리이 유지(堀井雄二)씨, 캐릭터 디자인의 토리야마 아키라(鳥山明)씨, 음악의 스기야마 코이치(すぎやまこういち)씨가 떠오르듯이
'파이널 판타지' 하면 프로듀서 사카구치 히로노부(坂口博信) 씨, 캐릭터 디자인의 아마노 요시타카(天野喜孝)씨, 작곡가 우에마츠 노부오(植松伸夫)씨가 연상되기 마련이었지요.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세 사람 모두 한 때 콧수염을 길렀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카구치 씨는 2001년 영화 Final Fantasy : The Spirits Within의 실패에 대한 책임으로 스퀘어를 나갔고,
우에마츠 씨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2004년 FF12 제작중에 퇴사했습니다.
그래도 FF12만 해도 사카구치 씨와 우에마츠 씨가 Special Thanks나 삽입곡 등의 형태로 스탭 롤에 등장했었습니다만,
FF13에서는 완전히 빠져버렸습니다.
'파이널 판타지의 아버지'라 불리는 사카구치 씨와
파이널 판타지라는 게임의 이미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음악을 만든 우에마츠 씨가 떠날 정도이니,
그 아랫선의 제작진들의 변동이야 더더욱 심했죠.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 제작진의 변천과정을 돌아보면 FF3에서 FF4로 넘어올 때 한 번 대대적인 세대교체가 있었고,
그 이후로 FF4~FF8까지는 거의 동일한 스탭진들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FF9 이후로는 제작 스탭들이 매번 완전히 물갈이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살펴 보시면 FF9, FF10, FF12의 게임 스타일은 FF8 이전과도 다르고 서로서로 모두 다릅니다.
안정되지 못했다는 느낌이랄까... 게임의 퀄리티도 시리즈마다 기복이 심했다고 느껴집니다.
FF12 때는 사태가 매우 심각해서 제작 도중에 프로듀서였던 마츠노 야스미(松野泰己) 씨도 스퀘어 에닉스를 그만두고,
파이널판타지 시리즈의 아트 디렉터를 FF5 시절부터 담당했던 미나바 히데오(皆葉英夫) 씨도 그만두고,
말씀드린 대로 음악 프로듀서였던 우에마츠 씨도 그만두고...
FF12 게임 제작 도중에 총 책임자를 비롯해서 각 개발부문의 장이 3명이나 그만둔 초유의 사태를 겪었습니다.
이 정도 사태는 우연이라고 보기는 힘들 것 같고,
뭔지 모르지만 이들을 나가게 한 공통적인 원인이 스퀘어에닉스 내부에 있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할 것 같습니다.
FF13의 제작진은 FF10 개발진들이 주가 되고, FF10에서 처음으로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FF13의 프로듀서는 FF5~8의 디렉터였고 FF10의 프로듀서를 맡았던 키타세 요시노리(北瀬佳範) 씨입니다.
일견 사카구치 씨와 우에마츠 씨로 상징되는 구세대에서 FF10/13 제작진의 신세대로 세대교체가 안착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시점에서...
갑자기 FF13의 작곡자인 하마우즈 마사시 씨가 FF13 발매 1달 만에(2010년 1월) 스퀘어에닉스를 그만두었습니다.
파이널 판타지 스탭들의 이탈 현상은 아직도 계속 되고 있다는 얘기죠.
스퀘어에닉스에는 원래 우에마츠 노부오 씨를 비롯해 많은 역량있는 작곡가들이 소속되어 있었는데,
우에마츠 씨 이후 후쿠이 켄이치로(福井健一郎) 씨, 나카노 쥰야(仲野順也) 씨, 하마우즈 씨 등 차례차례 회사를 떠나고
이제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의 음악을 작곡한 사람은 아무도 스퀘어에닉스에 남아있지 않은 것입니다.
(FF11에 참여했던 2명은 아직 남아있긴 합니다만 저는 왠지 FF11, 14는 파이널 판타지가 아닌 것처럼 느껴져서...^^)
게다가 스퀘어에닉스의 와다 요이치(和田洋一) 사장은 최근 아예 한 술 더 떠서 EDGE라는 외국 게임지와의 인터뷰에서
☞"FF13 같은 게임 개발은 마지막이 될지도..."☜라는 발언을 했습니다.
링크 페이지의 맨 아래 부분쯤을 보면 와다 사장이 이런 얘기를 합니다.
"FF13과 같은 류의 게임을 스퀘어에닉스 내부에서 계속 개발해야 될지 어떨지는 재고해야 할 여지가 있다.
난 FF13 개발팀이 '차세대적'인 새로운 놀이의 형태를 창조해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파이널 판타지 팀은 너무 현재의 팬들의 취향에 영합하고 있다."
FF13의 모든 단점들이 FF13 제작진들이 일본의 JRPG 팬들의 구미에 맞게 만들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라는 핑계처럼 들리기도 하죠?
인터뷰 내용을 읽어보면 "자기는 스퀘어에 스카웃되기 전에는 스퀘어에서 파이널 판타지를 만드는지도 몰랐다"든지 좀 깨는 얘기도 나오고
"파이널 판타지를 외국 개발사에 외주를 줄지도 모른다"는 얘기까지 나옵니다.
생각해 보면 와다 사장의 언동은 지금까지 참 많은 물의를 일으켰던 것 같습니다.
이번 것도 그냥 흔한 그의 뻥이겠거니 하고 넘어가고 싶기는 한데,
회사 돌아가는 꼴을 보니 아주 근거 없는 허풍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단 말이죠.
와다 사장 취임과 때를 맞추어 파이널판타지의 아버지는 스퀘어를 떠났고,
그 후로도 와다 사장 재임 기간 내내 FF 개발자들은 계속 회사를 떠나고...
이상하게 와다 사장 시절에는 파이널 판타지 제작진들도 매번 바뀌고...
FF13으로 돈을 더 많이 벌겠다고 자유도와 스토리를 희생해 가며 멀티 플랫폼으로 만들고...
억지로 2009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출시하겠다고 게임 볼륨을 희생하고...
스퀘어는 예전에는 게임 프로듀서가 부사장직을 맡을 정도로 '크리에이터(사람) 중심의 회사'였는데
게임과는 전혀 관련 없는 법학 전공에 증권회사 출신인 데다가
파이널 판타지가 스퀘어 것인지 닌텐도 것인지 관심도 없던 사람이 사장이 된 이후로
'경영(돈) 중심의 회사'로 변모해 버린 것 아닐까요?
실제로 FF6, FF7만 하더라도 '뭔가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극한의 장인 정신을 추구하는 개발자들의 혼'이 손으로 느껴졌던 것에 비해
21세기의 파이널 판타지는 제작진들이 너무 경영진에 휘둘린다는 느낌입니다.
이런 식의 경영 마인드로 생각한다면
북미와 유럽의 '큰 시장'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서라든지 제작 단가를 절약하기 위해서
외국의 제작사에 외주를 주어 파이널 판타지를 만든다는 것도 하나도 이상할 일이 없는 게 됩니다.
주저리주저리 말이 많았는데, 한 마디로
앞으로 이름만 파이널 판타지이고 전혀 딴판인 게임 시리즈가 되어버리지는 않을까 걱정 된다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스퀘어에닉스에서 기존 파이널 판타지 스탭들을 다 내보낸 다음에 전혀 다른 사람들이 파이널 판타지를 만든다든지,
아니면 외부 제작사에 외주 하청을 줘서 파이널 판타지를 만든다면...
그런 게임이 과연 팬들이 생각하는 그 파이널 판타지가 맞을까요?
게임 회사도 '회사'인 이상 당연히 이윤 추구가 최우선의 목표겠지만...
'게임' 회사인 이상 마케팅이나 경영 기술보다는 창조적인 크리에이터 마인드와 장인 정신을 중심에 두고 이윤을 추구해줬음 하는 바램입니다.
제발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는 앞으로도 계속 제 마음에 드는 게임 시리즈로 지속돼 주기를 바랍니다.
FF13이 '진정한 의미의 마지막 파이널 판타지'였다고 기억하는 일은 없었음 좋겠네요
(FF11, 14는 왠지 파이널 판타지 같지 않게 느껴져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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