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2. 23. 20:50

OVA 건담 유니콘(UC) 제1화 감상: 우주세기의 화려한 부활


오랜만에 좋은 우주세기 애니메이션 하나 봤습니다.
OVA(original video animation)판 '기동전사 건담 UC(유니콘) 제 1화: 유니콘의 날(ユニコーンの日)'입니다.

OVA이지만 2월 20일부터 프리미어 리뷰라고 해서 극장에서 상영중입니다(일반 판매는 3월 12일부터).
(저야 물론 일본 극장 가서 본 것은 아니고...^^)

후쿠이 하루토시(福井晴敏) 씨의 동명 소설을 애니화한 작품인데,
소설은 안 읽어봤지만 이거이거 요즘의 영상 기술로 잘 되살린 완전 뼛속까지 우주세기스러운 건담이네요.

타이틀의 UC는 유니콘의 약자이지만 아마도 중의적으로 우주세기(Universal Century)의 적자(嫡子)임을 암시하려고 한 것 같습니다.
우주세기를 Universal Century라고 표기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여기에서 장황하게 설명 드렸고,
적 캐릭터 이름이 '풀 프론탈(full frontal - 정면 무삭제 누드)'이라는 소름끼치는 작명 센스도 맘에 안 들긴 합니다만...

첫화를 보고 급호감이 들어서 우주세기의 적자로 인정해주고픈 마음이 마구마구 드네요.


우선 캐릭터 디자인부터 바로 그 야스히코 요시카즈(安彦良和)씨입니다.
퍼스트 건담, 제타건담뿐 아니라 용자 라이딘, 콤바트라V, 다이모스, 다이탄 등등 70-80년대 수퍼로봇 애니메이션의 캐릭터 디자이너였죠.
'수퍼로봇대전' 같은 게임을 해보면 등장 인물의 1/3 정도가 야스히코 씨가 디자인한 캐릭터입니다.

요즘 세대라면 SEED 캐릭터 디자인의 히라이 히사시(平井久司)씨라든가 OO의 이노마타 무츠미 씨 그림체가 더 친숙하겠지만,
우주세기라면 역시 야스히코 씨죠^^.

그리고 역시 우주세기 답게 주인공은 뉴타입이고, 주인공 아버지가 건담을 만듭니다(혹시 네타?).
이에 대해서 '또냐, 너무 진부한 것 아니냐'고 비난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역시 저 같은 올드 팬은 친숙한 것에 대한 향수(鄕愁)랄까... 호감을 느끼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착하고 똑부러지게 잘 자란 미네바 자비님 하며 엘피 플의 12번째 클론이라는 마리다 크루스,
제간, 넬 아가마 같은 눈에 익은 우주세기의 인물과 물건들이 많이 나와서 세계관에 금방 몰입이 되더군요.

"내가 건담이다" 같은 손발이 오그라지는 영웅주의적인 멘트도 없고
우주세기 답게 전쟁의 무서움이라는 것이 실감나고 진지하게 그려져 있는 것도 좋았습니다.


건담UC에서 또 빼놓고 넘어갈 수 없는 것이 바로 천재 디자이너 카토키 하지메 씨의 MS들이 활약하는 전투장면입니다.
최근 구슬동자 건담과 인간의 프로포션에서 벗어난 MS가 잔뜩 등장하는 모모건담 애니만 보다가
카토키 씨의 늘씬한 인간형 MS들을 보니 '눈이 정화되는 느낌'이랄까요?

그리고 MS의 움직임에서도 '생물이 아닌 어디까지나 병기'라는 느낌을 잘 살린 거동을 보여주고 있고,
무중력, 진공 상태에 대한 물리적 표현도 사실적으로 잘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컴퓨터 그래픽스 같은 요즘 영상 테크닉들이 입혀져서 더 멋지고 실감납니다.

제 경우는 크샤트리야나 유니콘 건담의 전투보다
망 보다가 리젤과 제간 편대에 포위되어 공포 속에서 필사적으로 응전,
결국 "네오지온 만세"를 외치며 장렬히 산화한 기라줄루의 파일럿 사보아의 행동 묘사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무튼 바로 이런 것이 우주세깁니다.
반다이와 선라이즈가 이번엔 '30대 중반의 우주세기 팬' 타게팅을 제대로 한 것 같습니다.

건담UC 애니에서 MS들의 등장순서는 거의 반다이 HGUC 킷 발매순서와 동일합니다.
크샤트리야, 유니콘 건담, 기라줄루, 리젤, 스타크 제간, 로토...
반다이의 장사속이 정말 무서우면서도 애니에서의 멋진 활약이 떠오르면서 마구마구 사고싶어지는군요.
크샤트리야는 비싼데...


암튼 결론적으로 건담 UC, 우주세기 팬이라면 놓치면 안 될 애니메이션입니다.
반대로 우주세기 건담의 배경지식이 없으시다면 재미가 반감되는 그런 애니메이션이기도 합니다.
최소한 퍼스트 건담과 제타 건담 정도는 필수, 더블제타나 역습의 샤아는 선택으로 예습을 해 주셔야 재밌습니다.
 
그런데... 1화는 유니콘 건담 NT-D 모드(디스트로이 모드) 풀 전개~! 로 이제 막 재미있어지려는 찰나에 똑 끝나버리네요.
2편은 가을 공개 예정이라는...-_-
궁금하게 만들어놓고 시간을 끌다니... 소설책을 팔아먹으려는 상술일까요?
OVA는 총 6편으로 기획된 걸로 알고 있는데, 이런 속도라면 2012년에나 끝나겠군요.

그건 그렇고 소설은 캐막장으로 치닫는다는데 애니도 결국 막장으로 끝나는 건 아닐지...
기대가 되면서도 불안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