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7. 9. 09:47

폴크스바겐 제타와의 인연

제가 블로그에 소홀하던 동안 뭘 했냐 하면...
폴크스바겐의 '제타(Jetta)'라는 차를 계약하고 차 들어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다음주 목요일에 차를 인수 받게 됩니다.
딱 장마 끝나고 여름휴가 시즌이라 타이밍이 참 좋죠?

너무 감개무량한 마음에 이 차와의 인연에 대한 얘기를 정리해볼까 합니다. 나름 운명적입니다^^


5월 중순까지만 해도 제가 이 차를 사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 정도가 아니고 아예 제타라는 이름의 차종이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1-

첫번째 운명적 만남은 1986년, 그러니까 2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됩니다.

1985년에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하며 방영됐던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Z건담'이 그 이듬해인 86년쯤 문구점에서 파는 해적판 서적을 통해 한국에도 소개됐습니다.

사진출처: CAPSULE 블로그

VCR도 잘 보급되지 않았고, 로봇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상영 및 방송이 법적으로 금지되던 군사정권 시절,
거대한 로봇이 등장하고, 꿈과 희망이 아닌 음모, 배신, 죽음, 전쟁 같은 암울한 주제를 다룬 Z건담은 초등학생인 제겐 '문화적 충격'이었죠.
불혹을 바라보는 지금까지도 팬으로서 너무 좋아하고, Z건담에 등장했던 기체들의 플라모델도 꽤 많이 갖고 있습니다.

근데 이거 '제트건담'이나 '지 건담'으로 읽으시면 안 됩니다.
Z가 그리스 문자의 '제타(Zeta)'이기 때문에 '제타 건담'이라고 읽으셔야 한다는...
실은 저도 이 사실을 고등학교 때나 돼서 알게됐습니다^^

폴크스바겐 제타는 제트기류에서 따온 Jetta지만... 한글로 쓰면 동일한 제타라는 거!
일본의 제타와 독일의 제타가 한국에서 만났다는 거!
와아, 운명적이지 않나요?
치켜 올라간 눈매도 뭔가 닮아보이고 말이죠(아님 말구요^^). 

또 한 가지 운명의 장난은 기동전사 제타 건담의 마지막 끝판왕은 '파프티머스 시로코'라는 인물인데...
폴크스바겐에서도 '시로코(Scirocco)'라는 차가 나왔다는 거죠.


-2-

두번째 인연은 정확한 년도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90년대 후반이었습니다.
당시 객지에서 대학원을 다니던 저는 지도교수님께서 타시던 90년식 하얀 쏘나타 1을 물려받아, 제 첫 차로 삼았습니다.

쏘나타 1이 제타랑 무슨 상관이냐고요? 음... 일단 '타'자 돌림이고요.
음... 차체 크기가 거의 똑같습니다! 게다가 휠베이스(2650mm)는 동일합니다!
제타는 아반떼 급의 준중형 세그먼트의 차이지만... 세대가 거듭될수록 차체가 계속 커지다 보니 옛날 중형차 쏘나타 크기가 된 거죠.
물론 현행의 YF쏘나타는 제타보다 길이가 17.5cm, 폭이 5.5cm나 크고, 아반떼 MD가 제타와 크기가 비슷합니다.

모든 차들의 크기가 이렇게 점점 커지는 이유는 뭐 미국의 보행자 안전규정이 어쩌구 하는 얘기도 있던데...
제 개인적인 생각으론 신모델이 구모델보다 작으면 사람들이 싫어할 거 같아서 커지는 게 아닌가 하는 단순한 생각을^^

그리고 실루엣도... 제타와 쏘나타 1은 전체적인 분위기가 닮지 않았나요?
직선이 메인이지만 적재적소에 곡선들이 들어간 부드러운 분위기...(아님 말고요^^)

제 쏘나타 1은 제 지도교수님께서 타시기 전에 다른 교수님께서도 타셨었는데,
그분이 지금은 우리회사 전무님이 되셨습니다. 뭐 그 분은 절 잘 모르시지만...-_-
아무튼 뭔가 저와 인간적인 인연이 있는 운명의 소나타였다는 거죠.

이 운명의 소나타는 큰 문제 없이 오랫동안 저와 함께 했고,
말년에 파워 트레인 쪽의 잦은 트러블로 인해 2007년, 16만km 정도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생을 마감하고 폐차됐습니다.


-3-

세번째 인연은 8년 전, 2003년에서 2004년에 걸쳐 대략 6개월간 제가 독일로 장기 출장을 갔었더랬습니다.
그 때 회사에서 렌트해준 메르체데스 벤츠 E 클라세를 탔는데요.
당시엔 한국에선 보기 힘든 사이드 미러의 리피터라든지 우적감지 와이퍼라든지 다양한 편의장치들도 좋았지만,
달려보니 아우토반에서 막 230km/h를 찍는데도 고속주행이 엄청나게 안정적이라는 걸 느끼면서 '독일차는 뭔가 다르구나' 생각했죠.

이거 머야~ 왜 조수석 쪽에서 폼잡고 있어ㅋㅋ

함께 출장 간 분들께 "10년 후에는 메르체데스 벤츠나 BMW 차를 타겠다"는 말도 안 되는 호언장담을 하기도 했었는데...
10년 가까이 지나서 브랜드는 다르지만 아무튼 독일 차를 타게 될 것 같긴 하네요(제타는 '메이드 인 멕시코'니깐 그것도 아닌가요-_-?).

그리고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도 가보고 하면서 유럽에는 디젤 승용차가 많이 실용화되어 있고,
발전의 여지가 별로 없는 가솔린 엔진에 비해 디젤 엔진은 계속해서 성능과 효율이 향상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어,
디젤 차량에 대한 호감과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또 현지 교포분들이 몰고 다니시는 폴크스바겐 골프를 보면서 '참 실용적이고 튼튼해 보인다' 생각했더랬습니다.
근데 희한하게도 독일에서 골프나 폴로나 파사트 같은 다른 폴크스바겐 차는 많이 봤지만 '제타'는 기억에 없습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막 저랑 제타랑 간발의 차이로 서로 못보고 엇갈려 지나치고 뭐 그런 운명적인 엇갈림이 있었을 겁니다, 분명히.
멀리서 보고 손을 들어 인사하려고 하다가, 상대방이 다른 이성과 함께 있는 걸 보고 멋쩍게 손을 내린다든지 하는... 왜 그런 장면 있잖아요^^


-4-

올 해 초에 한국에도 골프 블루모션테크놀로지 모델이 들어온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그 때만 해도 그냥 '골프 신모델이 들어왔구나.' 정도로 생각하고 지나쳤습니다.

일단 '내가 무슨 수입차를...'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21.9km/ℓ라는 연비는 정말 매력적이긴 했지만 해치백은 아무래도 꺼려지더군요.
지금 모닝에 아이를 태우고 다니는데, 유모차 하나만 실어도 트렁크가 꽉 찹니다.
물론 준중형 해치백인 골프는 경차인 모닝보다는 짐 수납공간이 넓긴 하겠지만 아무래도 한계가 있겠죠.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워낙에 세단형을 선호하잖아요^^?


-5-

그러다가 드디어 5월 중순 쯤에 케이블 TV에서 제타 광고를 처음 봤습니다.
광고에서 본 첫인상은 그저 그랬는데요.
사실 '제타'라는 이름 말고는 디자인이나 광고문구나 확 와닿는 게 없었죠.

솔직히 이 광고는 좀 '아니다'. 시트 색깔도 실판매 제품 색이 아니고...

그런데 이런저런 정보들을 접하다 보니 아, 이 친구가 정말 진국인 겁니다.
제가 호감 갖고 있던 골프와 플랫폼을 공유하고,
연비는 막 22.2km/ℓ로 당시 한국에 출시됐던 내연기관 차량 중엔 제일 높고,
트렁크 공간은 그랜저(454ℓ)보다도 넓고(510ℓ),
막 터보 직분사 엔진에 7단 듀얼 클러치 트랜스미션 같은 최첨단 기술들이 들어가 있고,
디자인도 별로 임팩트는 없지만 막 볼수록 매력 있고...

때마침 우리 회사가 작년에 돈을 많이 벌어 보너스도 두둑히 줬고...
때마침 3월에 승진도 해서 수입차를 타더라도 주위 사람들에게 크게 눈치 보이지 않는 상황...

그래서 5월 말 ~ 6월 초에 시승을 하고 계약을 했고,
다음주 목요일이면 차를 인수 받게 됩니다.

이렇게 저와 인연이 깊은 찬데... 제가 데리고 와도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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