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0. 11. 12:59

날광와 웻룩 비교 실험 - 1차 실패ㅜㅜ

디테일링에 입문하면서 가장 신기했던 것이 '광택에도 종류가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LSP(Last Step Procduct) 제품을 합성 실런트를 사용할 경우 날광이 나고, 천연 카나우바 왁스를 사용하면 웻룩(wet look)이 난다고 하더군요.

얘길 들어보면 날광은 '날카로운 광', '아크릴을 한 겹 덧씌워놓은 듯한 광'이라고도 하며 '시럽을 발라놓은 듯한 광'이라고도 하고,
웻룩은 '촉촉하고 차분하고 깊은 광', '색깔이 선명해지는 느낌'이라고도 하고 '기름을 발라놓은 듯한 광'이라는데...
솔직히 이렇게 말로만 들어서는 도대체 어떤 느낌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밝은 색에는 왜 시럽 바른 날광이 좋고, 진한 색에는 왜 기름 바른 웻룩이 좋은지는 더더욱 모르겠고요.

저도 '은색 차엔 날광'이라는 얘기에 디테일링 입문할 때부터 아크릴릭한 날광 LSP 제품만 고집해왔습니다.
날광의 대명사라는 Klasse HGSG(High Gloss Sealant Glaze)를 비롯해서 전반적으로 날광 성격이 강한 합성 실런트 제품 위주로 구입했죠.
원래는 날광이 아닌 웻룩이 강해야 할 카나우바 왁스 중에서도 굳이 날광 성향의 레이스글레이즈 42를 콕 찝어서 구입했고요.
 

 

그런데 지난 10주간 위 사진의 모든 LSP들을 번갈아 가며 발라봤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최고의 날광이라는 놈을 바르나 날광이 별로라는 놈을 바르나 광택이 달라진 건지 어떤 건지 느낌이 안 오더라고요.
아니 솔직히 말해서 뭘 바르긴 바른 건지 쌩얼인지도 잘 구분 못하겠습니다.

명색이 디테일링이 취미라면서 이런 상태여서는 안 되겠다 싶어 막눈 탈출을 위한 실험을 준비해 봤습니다.
광택을 제대로 느끼고, 차이를 구분할 줄 아는 안목을 기르고 싶어서요.
LSP를 바른 부분과 안 바른 부분은 광택이 얼마나 차이 나는지,
그리고 날광과 웻룩은 정확히 어떻게 다른 것인지 실험을 통해 눈으로 확인해 보고자 합니다.

지금 갖고 있는 LSP들은 날광용밖에 없기 때문에 이 실험을 위해 웻룩 느낌의 카나우바 왁스 2종을 새로 공수했습니다.

먼저 Zymöl사의 Glasur Glaze입니다.
'남자의 왁스'라고도 불리는 기름진 웻룩의 대표격 제품이라네요.
복주머니 같은 파우치에 들어있고, 빨간 봉인딱지에... 시리얼 넘버라든지 보증서 같은 것도 있는 것이... 고급스러워 보이기는 합니다.


Zymöl사의 Glasur를 Swissvax 사의 Glacier(글레이셔)와 혼동해서 흰색 도장 전용 왁스로 잘못 알고 계시는 분도 있지만,
Zymöl Glasur는 차량 컬러와는 상관이 없고, 포르셰 차량의 도장면에 특별히 적합하게 제작된 제품이라고 합니다.
왁스통에 붙은 GLASUR 홀로그램 스티커 위쪽을 잘 보시면 'Engineered for Porsche'라고 쓰여 있습니다.
Swissvax 제품 중에서는 Glacier보다는 Zuffenhausen(추펜하우젠, 포르셰 본사가 있는 지역 이름)과 비슷한 성격의 제품이죠.

차 컬러에 특화된 관리용품들은 많이 있지만 차량 회사에 특화된 용품은 오로지 두 회사, Swissvax와 Zymöl 제품밖에 없습니다.
그치만 이런 왁스가 특정 차량 메이커의 도장면에 다른 왁스 대비 더 좋다는 객관적이고 정량적인 실험 데이터 따위는 본 적 없습니다^^

적어도 한국에서 Glasur를 구입한 대부분의 사람들의 차는 포르셰가 아닐 걸요^^


Glasur라는 단어는 영어의 glaze와 같은 뜻을 가지는 독일어 단어입니다.
정식 제품명이 'Glasur Glaze'니깐 번역하면 '글레이즈 글레이즈'가 되네요.
마치 아랍어로 '사하라'는 사막이라는 뜻이니깐 '사하라 사막'은 '사막 사막'인 것과 같은 경우죠.

글레이즈라 하면 주로 보호 왁스층 없이 스월만 감추는 용도의 제품을 지칭하지만, Zymöl에선 그냥 고급 왁스들을 글레이즈라 부르는 듯합니다.
Glasur의 독일식 발음은 '글라주어'이지만 Zymöl이 미국회사이기 때문인지 보통 '글레이저'라고 부르더군요.
Zymöl 회사 이름도 움라우트(점 두개) 따위는 무시하고 보통 '자이몰'이라고 부르고요.


두번째 웻룩 제품은 '뇌출혈'이라는 애칭을 가진 Dodo Juice의 Supernatural 왁스 샘플 제품입니다.


처음엔 200ml 제품을 놓고 살까말까 심하게 갈등했었는데, 30ml짜리 소용량 샘플이 있더라고요.
다른 샘플이나 미니어처 제품들은 큰 제품에 비해서 용량 대비 막 두 배씩 비싸기도 하고 그러는데,
수퍼내추럴 소용량 제품은 용량 당 단가가 비슷한 수준이었기에 부담 없이 구입했습니다.

제 손이나 글레이저와 비교해보면 정말 앙증맞게 작습니다. 사실 제 손도 좀 작은 편이거든요.
'아 저걸 누구 코에 발라' 생각할 분도 계실지 모르겠지만 차 대여섯 대 이상 바를 양은 됩니다.
그에 비하면 큰 통은... 개인이 쓰면 정말 몇 년 가죠^^;;


사용해본 분들은 수퍼내추럴의 광택을 한 마디로 '맑은 광'이라고들 얘기하시더군요.
전통적인 웻룩과도 조금 다른 듯하고 날광도 아닌, 이 수퍼내추럴의 맑은 광이란 도대체 어떤 건지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실험은 다른 분들 하시는 것처럼 차의 후드를 구획을 나누어 각 부분에 날광과 웻룩의 LSP를 시공하고 비교해 보는 것인데요.
다음과 같이 진행했습니다.

1. 세차 후, 후드 부분만 이소프로필알콜(IPA) 50% 용액과 S100 프리왁스 클렌저를 써서 이전 왁스층을 깨끗이 닦아냈습니다.

 
2. 후드를 가로세로 각각으로 이등분 되도록 마스킹 테이프를 붙였습니다.
네 부분 면적이 비슷하도록 나누었지만 후드가 볼록 튀어나왔기 때문에 사진 상으로는 아래쪽 구역이 훨씬 넓어보이는군요.


3. 후드의 네 구역에 각각 다음 제품들을 어플리케이터로 바르고, 각 제품 설명서에서 지시하는 시간 후에 버핑했습니다. 물론 스와이핑 테스트도 해서 도장면에 잘 먹었는지 확인 후 버핑했습니다.


 날광의 대명사 Klasse High Gloss Sealant Glaze  맑은 웻룩 Dodo Juice Supernatural Wax
 날광 성향 카나우바 RaceGlaze Signature 42 Wax  대표적인 기름진 웻룩 Zymöl Glasur Glaze

4. 제품의 특성 상 HGSG는 레이어링의 효과가 크고 Glasur는 2차 버핑이 필요하기 때문에, 8시간 후 HGSG는 2차 레이어링 적용해주고 다른 왁스들은 모두 2차 버핑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마스킹 테이프를 떼었습니다(마눌님께서 차를 써야 돼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_-).

5. '버핑 후 일정시간이 경과해야 본연의 광이 올라온다'는 제품도 있기 때문에 또다시 24시간이 지난 뒤에야 광택을 비교해봤습니다.

저는 막 한눈에 경계선이 보이고, 웻룩 부분은 색감도 명확히 차이 나고 리플렉션도 전혀 다르고 그럴 것으로 예상했는데...


각도를 달리 해서 요리 보고, 조리 봐도, LSP들 간의 색감, 투명도, 리플렉션 등의 차이를 전혀 느낄 수 없었습니다ㅜㅜ
LSP를 바른 부분과 마스킹 테이프를 붙여서 LSP가 발리지 않았던 부분마저도 차이가 없어서 경계선이 어디인지조차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형광등 불빛 아래이기 때문에 구분이 잘 안 가는 것 아닐까 해서 실외로 나가 자연광 아래서 비교해봤지만...


역시 차이가 별로 눈에 띄지 않습니다.
왁스 경계면을 도저히 알아볼 수가 없어서 보시는 분의 편의를 위해 사진 상에 노란색 십자가로 구획 경계선의 중심을 표시했습니다만...
HGSG나 레글42의 날광도, 글레이저의 웻룩도, 수퍼내추럴의 맑은 광도... 육안과 사진 상으로 구분할 수 없었습니다.

이번 실험은 대략 실패인 것 같네요-_-

아무래도 반사율 높은 은색의 컬러 도장층에서 반사된 빛이 워낙 강해서
그 위 왁스층의 표면 리플렉션이나 색감, 투명도의 미묘한 차이를 감지하는 데 크게 방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거기다가 후드가 볼록해서 4개의 구역이 빛을 받는 각도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공정한 1:1 비교가 특히 더 어려웠습니다.


다음번에는 한 번 운전석쪽 앞문짝과 뒷문짝에 각각 HGSG와 글레이저의 딱 두 가지만 발라서 광택을 비교해볼까 합니다.
그러면 이번 실패 요인이었던 채광이 서로 다르다는 문제는 해소될 듯합니다.
은색 도장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없지만요-_-

사실 뭐 크게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
후드에서 안 보이던 광택 차이가 문짝이라고 확 차이 나 보이지는 않을 테니까요.
만약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아주 미묘하겠죠.

그리고 후드는 모처럼 비교실험 세팅을 한 김에 발수성도 테스트해 보고 한 달쯤 그대로 놔두어 지속성도 비교해보고 할 예정입니다.


아아 역시 득광(得光)의 길은 멀고도 험하군요ㅜㅜ.